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늑대와 향신료/실제 중세시대와의 비교 (문단 편집) == 시대에 따른 배경 == [include(틀:스포일러)] * 1권에서 호로가 "난 약속대로 그 마을의 보리밭을 참으로 훌륭하게 만들었어.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가끔 보리가 여무는 것을 나쁘게 해야하만 하는 때가 있었어. 땅에 무리를 시키려면 대가가 필요하거든."이라고 말하자 로렌스가 "최근 남쪽 선진국[* 여담으로 실제 [[삼포제]]가 처음 개발된 곳은 [[프랑크 왕국#s-2.2|카롤링거 제국]]으로 작중 배경이 중·[[북유럽]]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남쪽 선진국의 모티브는 카롤링거 제국이 확실하다.]의 새로운 농법을 서서히 도입하여 생산고를 높히고 있다고 한다."라고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는 2포제에서 3포제로 변화하는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wiki style="margin:10px" {{{-1 전근대 유럽의 [[농업]]에서는 윤작, 즉 돌려짓기[* 같은 땅에 여러 가지 농작물을 해마다 바꾸어 심는 일.]가 일반적이었다. 농사를 한 번 짓고 난 뒤 고갈된 [[지력]]을 회복시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과 같이 화학 비료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과거 동양에서 처럼 사람의 분뇨를 [[거름]]으로 이용할 줄도 몰랐다. {{{#!wiki style="margin:24px 0 0 16px;float:right;width:35%;max-width:600px;font-size:.9em;" [[파일:중세_씨를 뿌리는 농부_삽화.jpg|width=100%]][br] 베리공의 매우 호화로운 기도서 中. [[1489년]] 作 }}}사실상 가축의 [[배설물|분뇨]]가 유일한 거름이었는데, 그나마 가축의 수요가 적었던 까닭에 거기서 나오는 거름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따라서 [[휴경지|토양이 스스로 지력을 회복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경작지로 쓸 수밖에 없었는데, [[고대 로마]] 이래로 가장 일반적인 윤작 방식은 이포제였다. 경작지를 한 해 걸러 한 번씩 농사에 이용한 것이다. 이에 비해 (14세기 초에 개발된) [[삼포제]]는 전체 농경지를 삼등분한 후 두 부분은 각각 봄과 가을에 파종하여 작물을 재배하고 나머지 하나는 1년간 경작을 않고 내버려 두는 방식이었다. (중략) 이와 같이 농경지의 ⅔가 실제 농사에 투입됨으로써 절반만을 활용하던 [[농업 혁명|종전의 이포제에 비해 농작물을 거둘수 있는 토지가 1/6 더 생긴 셈]]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점을 지닌 [[삼포제]]가 [[유럽]] 전역에서 도입된 것은 아니었다. [[삼포제]]는 여름철 날씨가 비교적 습해서 봄 작물의 경작에 유리한 [[프랑스]] 북부와 [[북유럽]] 일대에 주로 보급되었다. }}}}}} ---- {{{#!wiki style="margin:10px" {{{-2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이영주 옮김,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알에이치코리아, 2015. }}}}}} || ---- * "내가 북쪽에서 처음 왔을 땐[* 작중으로부터 약 수백 년 전.] 교회가 빌빌거리는 정도였다"라는 호로의 발언이 등장하는데 이는 [[서로마]] 붕괴 이후 [[가톨릭교회]]의 지배력이 약했던 시점을 가리킨다. ||||{{{#!wiki style="margin:10px" {{{-1 "교회는 옛날부터 대단했잖아?" "아니, 아니지. __내가 북쪽에서 여기로 왔을 무렵엔 그렇지도 않았거든.__ 적어도 [[야훼|유일신]]이 12명의 천사와 함께 [[창세기|세상을 만들고]], 사람은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를 빌려 쓰고 있다는 그런 과장된 얘기는 안했어.[* 이렇게 보면 [[무신론]]자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무신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현랑 호로|자신]]이 이교의 신이기 때문.] 자연은 누가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대체 언제부터 교회가 [[희극]]을 연출하게 됐나 싶을 정도야." __가끔 전해 듣는 [[과학자|자연학자]]의 교회 비판과 비슷한 말__이긴 한데, 몇 백 년 동안 풍작을 관장한, 자칭 현명한 늑대가 하는 얘기라 흥미롭다.[* 이 문장만 보면 교회에 비판적인 작품으로 오해할수 있는데, 이 문구는 정교의 세상에 [[늑대와 향신료/정령|이질적인 존재]]인 호로가 말하는 대사일 뿐, 소설에서는 어느 종교가 좋고 나쁘다를 논하지 않는다. 가장 큰 예로 로렌스는 교회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나고 자란 평범한 인물이지만 교회에 맹목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이교도가 옳다는 신념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묘사되며 ~~사실 로렌스에겐 돈이 하느님이고 종교다.~~ 후속작인 [[늑대와 양피지]]에선 주인공인 [[토트 콜]]은 성직자가 꿈인 청년으로 등장한다.][* 다만 [[하세쿠라 이스나]]는 "하느님은 어째서 [[침묵]]하는가?" 하는 자신의 생각을 늑대와 향신료(5권)뿐 아니라 [[소녀는 서가의 바다에서 잠든다|자신의 다른 작품]]속 캐릭터들의 입을 통해 언급하는 만큼 [[도그마|교조주의]]에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 ---- {{{#!wiki style="margin:10px" {{{-2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늑대와 향신료 (1)』''', 서울, 학산문화사, 2007, p.90.}}}}}} || 또한 가끔 전해 듣는 자연학자의 교회비판이라는 대목은 [[자연철학|자연철학자]]들[* 현재의 [[과학자]] 정도로 보면 된다. 대표적인 인물로 [[티코 브라헤]], [[요하네스 케플러]], [[갈릴레오 갈릴레이]],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등이 있다. 과학자와 다른 점은 자연 물리학을 관측하지만, 오로지 과학적 이론에 근거하는 현재의 과학자들과는 달리 철학적, 종교적인 개념도 활용했기 때문이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이유도 과학적 이유뿐 아니라 "[[천동설]]에 따르면 태양과 행성들의 움직임들이 쓸데없이 복잡한데 하느님께서 굳이 그렇게 복잡하게 만들었을까"라는 [[철학]]적 [[개념]]에서 시작했다.][* 또한 지금 관념에서는 과학자라고 취급되는 위인들도, 당시에는 스스로를 '''자연철학자(Natural Philosopher)'''라고 자칭했다. [[아이작 뉴턴]]이 대표적. 애당초 과학(Science)과 과학자(Scientist)라는 단어는 19세기에 윌리엄 휴얼이 자연철학이라는 말이 너무 뜻이 심원하기 때문에 자신들은 지식의 탐구자(Scientist)라고 불려야 한다고 해서 제안된 단어다. 또한 이 19세기를 전후하여 철학적 색채가 많이 빠져나간 자연철학이 자연과학이라는 분야로 정착되며 지금의 과학/과학자라는 단어가 세상에 정착되게 된 것이다.]이 교회의 사상과 충돌하는 것을 묘사한 것으로 보여진다. 참고로 호로가 여행을 떠나 정착하고 다시 요이츠로 돌아가는 것이 서로마의 붕괴와 이민족들의 번영, 그리고 [[기독교]]의 번성을 나타낸다는 분석도 있다. [[http://gall.dcinside.com/m/spiceandwolf/4719|엔딩 스포 주의]] ---- * 작중 시점에서는 교회의 권위가 정점을 찍고 내려오고 있다는 문구가 등장한다. ||||{{{#!wiki style="margin:10px" {{{-1 게다가, 최근 교회는 [[이단심문관|이단심문(異端審問)]]이나 이교도 개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요사이에는 도시부 교회에서 신학자들과 자연학자들 간에 언쟁이 벌어지는 일도 드물지 않다. 옛날처럼 모든 민중들이 무조건적으로 교회 앞에 넙죽 엎드리는 일은 없어졌다. __절대적이었던 교회의 권위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__ }}}}}} ---- {{{#!wiki style="margin:10px" {{{-2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늑대와 향신료 (1)』''', 서울, 학산문화사, 2007, p.22.}}}}}} || ---- ||||{{{#!wiki style="margin:10px" {{{-1 신이라 불리는 존재가 무조건 세상의 중심이었던 시대는 지나려 하고 있다. 그것은 [[교황령|교회가 강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탈리아|남쪽]]에서도 마찬가지다. }}}}}} ---- {{{#!wiki style="margin:10px" {{{-2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늑대와 향신료 (4)』''', 서울, 학산문화사.}}}}}} || ---- ||||{{{#!wiki style="margin:10px" {{{-1 __요즘 세상에는 교회의 권위가 약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__이지만, 그래도 아직 그 저력은 쇠약해지지 않았다는 인상을 어딘지 모르게 받았다. }}}}}} ---- {{{#!wiki style="margin:10px" {{{-2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늑대와 향신료 (10)』''', 서울, 학산문화사.}}}}}} || 이는 [[십자군 전쟁]]의 실패[* <늑대와 향신료>에서는 [[예루살렘|성지]]를 탈환하는 십자군은 이미 중단된 상태고, 이교를 정벌하기 위한 북방 대원정이 진행중이나 지지부진한 상황으로 묘사된다.]와 세속 군주의 성장, [[흑사병]][* 작중 주인공들의 이야기에서는 등장하지 않으나 [[노라 아렌트]] 외전에서 "역병이 돌아 인구의 절반이 사라진 도시"가 언급된다. 또한 작가의 [[소녀는 서가의 바다에서 잠든다|다른 작품]]에서도 [[흑사병]]이 언급된다.]으로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던 13세기 이후 [[교황]]의 권위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 * "[[교황]]이 세금이 생각보다 걷히지 않아서 [[대성당]]의 복구비를 국왕에게 떠넘겼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중세 교회가 돈을 뜯어내는(...) 방법을 묘사한 것이다. ||||{{{#!wiki style="margin:10px" {{{-1 교회에 대한 불평불만은 많았으나 뭐니 뭐니해도 가장 심한 불만이 쏠린 것은 교회의 재산이었다. 그럼에도 교회는 국왕들로부터 해마다 공납금을 거두고 있었다. 사교(司敎, 사제)[* [[일본]] 천주교회에서 [[주교]]를 가리키는 말. [[가톨릭/대한민국|한국 천주교]], [[정교회]], [[대한성공회]]에서는 [[주교]]라고 한다.]들도 취임할 때는 교회에 취임료를 바쳐야 했다. __교회당의 건립, 내부 장식, 걸인 구제, 전쟁, 그 밖의 무수한 일을 구실 삼아 교회는 갖가지 방법으로 세금을 징수하고 있었다.__[* 물론 오늘날 [[천주교]]에서는 주교와 사제가 취임료를 바치는 일도 없고, 헌금 명목도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오늘날 이런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은 [[개신교]]다.] }}}}}} ---- {{{#!wiki style="margin:10px" {{{-2 이영수, 「루터 종교개혁의 원동력」, '''『독일학연구』''', 제18권, 2002, pp.129-142, p.130.}}}}}} || ---- * 작중에서 시대에 따른 계급의 변화도 묘사된다. ||||{{{#!wiki style="margin:10px" {{{-1 제가 젊었을 적에는 새로운 땅을 향해 진격하는 것은 영주와 그가 이끄는 기사인 귀족들의 역할이었지요. 그러던 것이 __어느새 귀족은 기사가 아니게 되고, 왕은 성 밖으로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__[* 물론 일반적이지 않은 설명으로 다는 아닐지라도 18세기까지 나폴레옹처럼 친정을 한 황제나 왕이 있었고, 귀족들도 대검 귀족 가문이라면 장교로 복무했다.] 우리 용병들이 돈에 고용되는 빈도가 몇 배는 많아지고, 고용주는 각지의 왕에서부터 큰 도시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부자 귀족들, 대상인들이 되었습니다. }}}}}} ---- {{{#!wiki style="margin:10px" {{{-2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늑대와 향신료 (15)』''', 서울, 학산문화사.}}}}}} || 11세기말~13세기 중반에는 봉건제 영주를 따르는 기사들이 있었고, [[기사(역사)|기사]]는 가문이나 혈통에 주어지는 계승 직위가 되기 시작하면서, 기사라 것이 준귀족화 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기사는 [[금수저|기사로 태어나는 것]], 또는 군주가 하사하는 것이 된다.[* 국왕이 하사한다는 부분을 정확히 말하면 지위를 직접 내리는 것이 아니라 봉토를 주거나, 과거 미망인 등 봉토를 가진 여자와 결혼을 주선해주는 방식을 취했다.[[http://egloos.zum.com/sestiana/v/1842266|해당 포스팅]]을 참고.] ||||{{{#!wiki style="margin:10px" {{{-1 이어지는 독립 성주의 시대에는 사회관계가 기사와 농민으로 재편되며, 노예와 명사라는 표현이 사라진다. 기사는 토지 영주권([ruby(Seigneurie Foncier, ruby=세뇌리 퐁시에)]), 공권 영주권([ruby(Sei-gneurie Banale, ruby=세뇌리 바날)])을 행사하는 전사로 존재하며, 일종의 [[카스트]]가 이루어진다. __13세기 초에 이르면 신분 질서는 혼란되며, 부자들이 기사가 되기도 하고, 기사도가 출현하면서 귀족 혈통이 세습되고 폐쇄된다.__[* 상기한 13세기 중반에 기사가 준귀족화했다는 서술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구체적으로 말하면 둘 다 사실이라서 그렇다. 11세기 이래로 기사가 '고귀한 신분'과 결부되는 개념은 계속 이어졌으나, 어디까지나 법적인 신분 자체는 자유민이었기 때문이다. 고귀한 신분이란 개념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그게 무엇인지 정해진 바는 12세기 말까지 없었다. 때문에 기사 계급이 세습하는 경향이 나타나면서도 동시에 군주들의 군사적 필요성에 의해서 '저급한 신분'인 부르주아들이 기사로 서임되는 일은 끊임없이 있었고, 그런 신분 질서의 혼란이 절정에 이른 13세기 초중반부터는 자신들의 기득권이 침해되는 것을 볼 수 없던 귀족들에 의해 기사를 포함한 귀족 계급이 법적으로 세습되는 것으로 고정된다.] }}}}}} ---- {{{#!wiki style="margin:10px" {{{-2 '''『사료로 읽는 서양사 2 중세편: 게르만족의 이동에서 르네상스 전야까지』'''.}}}}}} || 이렇게 되자 [[십자군 전쟁]], [[백년전쟁]]을 거치며 국왕이 땅을 가진 이들에게 기사가 되라고 강요하는 일이 늘어나게 되는데, 목숨을 바치는 것이 두려운 귀족들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을 거부하며 반대 급부로 돈을 주고 사는 [[용병]]이 군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품에서 언급되듯이 상당히 높아지게 된다.[[http://blog.gorekun.com/?p=1387|중세: 왜 ‘용병’ 인가? #1]] ---- * 1권에서 최근 파슬로에 인근 귀족들이 땅으로 돈을 불리는 것에 재미를 들렸다는 대목이 등장하는데 이 또한 11세기 부터 중세 서유럽의 귀족들이 지주로 변신하기 시작한 것을 묘사한 것이다. ||||{{{#!wiki style="margin:10px" {{{-1 중세 서유럽 심장부의 기원은 프랑크족의 유산이었다. 그것은 남부에 비해 더 적은 수의 도시를 가지고 있었고 그 도시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파리(프랑스)|파리]] 같은 정착지는, 이를테면 [[밀라노]]와 같은 곳 보다는 상업의 몰락이 덜 괴로웠던 곳이었다. __삶은 토지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귀족은 지주로 변신한 성공적인 전사였다.__ }}}}}} ---- {{{#!wiki style="margin:10px" {{{-2 J.M.로버츠, O.A.베스타 저. 노덕경 외 옮김, '''『세계사(The History of the World)』''', 2015년, p.530.}}}}}} || ---- * 16권에서 뮤리 용병단과 후고 용병단은 각각 데바우 상회의 전 주인과 현 주인에게 고용되어 짜고치는 싸움을 벌이는데 이때 묘사되는 전투 전황은 실제 14~15세기 용병단의 일방적인 용병의 싸움 방식과 동일 하다. 작중에서 뮤리 용병단과 후고 용병단이 전투를 벌이고 그걸 고용주들이 지켜보는 장면, 하루에 2차례 전투를 벌이는 장면, 일부러 싸우는 척하며 피해를 최소화 하는 장면 등이 바로 그것. 중세 시대에 자신의 고용주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치는 뛰어난 충성심이 있던 것으로 유명한 [[스위스 용병]]이 당시에 가장 인기있던 용병이었던 것도 당시 용병들의 문화에서 기인한 것이다. ||||{{{#!wiki style="margin:10px" {{{-1 이러한 정치적 사정이 [[프리랜서]](용병단)가 활약할만한 환경을 조성했다. 15~16세기 유럽 대부분의 전쟁터는 프리랜서들의 무대였다. 하지만 애국심이나 승리에 대한 열정 따위는 10원어치도 없는 이 프리랜서들의 전쟁은 그다지 치열하지 않았다. __대부분의 전투는 누가 빨리 기동해서 주요 전략적 요지를 점령하느냐에 달렸으며 시일만 질질 끌다가 퇴각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__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도 양자가 치열하게 싸우는 전면전은 거의 없었으며 대부분 제한전(limited war)의 성격이 강했다.[* 단 모든 용병이 이렇게 짜고 치는 식의 전투는 하지 않았다. 한 예로 [[크레시 전투]]에서의 [[제노바 쇠뇌병]]들은 고용국인 [[프랑스]] 측의 사격전을 경시하는 경향으로 인해 6일 동안 전투지로 이동한 후 보호장비인 [[파비스]]를 진영에 놔두고 곧바로 고지대에 위치한 잉글랜드의 [[장궁병]]과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인해 후퇴해 다시 진영으로 돌아가 파비스를 갖고 오려고 하다가 이를 도주로 규정한 프랑스 기사대에 의해 도륙되었다.] }}}}}} ---- {{{#!wiki style="margin:10px" {{{-2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022810122500401|프리랜서는 왜 '용병'이라고 부를까]]'''.}}}}}} || ---- ||||{{{#!wiki style="margin:10px" {{{-1 [[이세환]] : 우리가 보통 용병 하면 전투가 시작하면 거칠게 싸울꺼 처럼 생각하는데, 물론 그런 용병들도 많았습니다만 14~15세기 때 [[이탈리아]] 용병 같은 경우에는 욕을 많이 먹었어요. [[허준(게임 캐스터)|허준]] : 대충 싸워서? 이세환 : 왜냐하면 용병은 승리해도 문제에요. (첫째로) 만약에 용병 부대가 승리해서 명성이 올라가면 그 순간 고용주의 가장 위험한 라이벌이 될수가 있어요. 왜냐하면 용병들이 언제 뒤집어 엎을 지도 모르잖아요. 2번째, 지면 돈을 못받잖아요.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게 적당한 선에서, [[전투]]가 마무리 짓는거 였어요.''' [[허준]] : '''이긴 거 같긴 한데, 그렇다고 큰 피해는 서로 없고.''' [[이세환]] : 이런 예가 있었어요.[*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자였던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저술한 『군주론』에서 [[용병]]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언급한 에피소드.] 이쪽도 용병도 저쪽도 용병이 있었단 말이에요. 싸워요. 싸움을 하루에 보통 오전 오후로 나눠서 싸웠거든요. 10시 반쯤? 저쪽에서 고용주가 보고 있으니까 야!! 하고 딱 가요. '''서로가 칼로 맞대는데 "야, 주변 어디가 맛있냐?" 이런 걸 이야기 해요. 그러니까 멀리서 보면 챙챙챙 소리가 나고 하니까 (고용주들이) 아 싸우나 보다, 라고 생각하죠.''' 1시간 반이 지나서 11시 반쯤 됐어요. 그럼 뭐할 거 같아요? [[윤지연]] : 점심 먹으러 가야죠. 이세환 : 그렇죠. 일단 우리가 점심 먹고 싸우자. 그럼 고용주도 이해해요. 점심 먹고 싸우려나 보다. 한 두시간동안 점심을 먹습니다. 그리고 유럽사람들은 점심을 먹으면서 [[포도주]]가 빠질수가 없잖아요. 술을 마십니다. 그럼 그걸 본 고용주가 화들짝 놀랍니다. "야, 너네 싸워야 하는데 왜 술을 먹지?" 이때 용병 대장이 기가 막힌 대답을 해요. 윤지연 : 이미 승리를 예감했다? 이세환 : 그런 수준 높은 말 말고. "원래 오후 싸움은 술기운으로 하는 겁니다." (웃음) 그리고 오후 3시 반쯤에 (대충) 싸우다가 두어 시간 지나면 어떻게 됩니까. 5시쯤 되면 끝납니다. }}}}}} ---- {{{#!wiki style="margin:10px" {{{-2 '''[[토크멘터리 전쟁사]] [[https://www.youtube.com/watch?v=S8Fhoq6i_Fc|94회 전쟁의 패러다임에 변화를 준 용병1]]'''.}}}}}} || ---- ||||{{{#!wiki style="margin:10px" {{{-1 그러나 __이번 싸움은 무의미한 전사자를 내지 않고, 적에게도 가능한 원한을 남기지 않으며, 그러면서도 서로의 고용주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묘기다.__ 어처구니없을지는 몰라도 중요하지 않을 리 없다. 물론 이런 일은 루워드가 혼자 새생각해서 될 일이 아니다. 용병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온 수많은 암묵적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돈만 갖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공갈협박이나 회유로 될 일도 아니다. 이것은 용병이라는 삶의 방식에 찬동하는 대다수 인물들의 의지의 결정체다. (중략) 언덕 저편에서 팔짱을 낀 채 이쪽을 보고 있는 덩치 큰 남자가 (고용주인) 레보넷이리라. }}}}}} ---- {{{#!wiki style="margin:10px" {{{-2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늑대와 향신료 (16)』''', 서울, 학산문화사. p.164}}}}}} || ---- * 작중 로렌스가 트레니 은화를 이용한 교섭을 추진하는 메디오 상회의 꿍꿍이를 추리하면서 "국왕은 귀족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그들에게는 특수한 권력이 부여되어 있다."라는 독백을 한다. 이는 중세의 [[봉건제도]]를 그대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봉건제도]] 문서를 참고. ||||{{{#!wiki style="margin:10px" {{{-1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국왕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해도 다른 귀족들보다 재산이나 영지가 많고, 그 위에 국왕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정당성을 주위가 인정하도록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신성 로마 제국]]의 경우 귀족들의 선거를 통해 왕위계승이 이루어 졌다. 이는 프랑스의 경우에도 별반 다르지 않아 [[카페 왕조]]의 시조인 [[위그 카페]]도 귀족들의 추대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 그러니 국왕이 다른 제후들과 공동으로 관리하는 국가의 재산을 멋대로 처분할 수는 없다. 따라서 왕가가 소유하고 있는 재산은 다른 귀족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특별한 것이 있다면 국왕의 이름하에 관리하도록 되어 있는 특수한 권력들이다. 바로 광산채굴권, 조폐권, 관세설정권, 시장관리권, 왕국 도시의 시장 임명권 등 ─ 실체가 동반되지는 않으나 쓰기에 따라서는 돈 열리는 나무가 되는 것들이다. }}}}}} ---- {{{#!wiki style="margin:10px" {{{-2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늑대와 향신료 (1)』''', 서울, 학산문화사, 2007, p.229-230.}}}}}} || ---- * 10권에서 가짜 [[성유물]]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스토리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며, 12권에서도 성유물이 어떤 가치를 지녔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wiki style="margin:10px" {{{-1 [[시성]]되어 [[성녀]]로 인정되면 그 인물과 관련된 물품들은 [[성유물]]이 되어 그 어떤 것이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비싼 값에 팔려 나간다. 거기에 기적을 일으킨다는 평판까지 나면 순례자들이 몰려들어, 교회뿐 아니라 주변 일대까지 윤택해진다. 그러니 자기 영토 내의 성직자를 성인으로 만들고 싶어 애를 쓰는 귀족들이 수두룩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고 한다. 귀족들 입장에서도 자신이 죽은 후의 행복과 살아 있는 동안의 이익이 걸린 일대 도박이다. 그러다 파산하는 자가 하나둘이 아니면서도 줄을 잇는 것은, 일단 성공만 하면 막대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 {{{#!wiki style="margin:10px" {{{-2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늑대와 향신료 (12)』''', 서울, 학산문화사. p.205}}}}}} || 중세시대, 혼란했던 시기에서 사람들이 [[성인(기독교)|성인]]의 유물을 소지하거나, 집에 모셔다 두는 등의 행위로 안식을 찾고자 했고 그 때문에 성유물을 갖고자 하는 욕망이 사회 전체를 뒤덮었었다. 당시 성유물에 대한 집착이 어느 정도였나면 지체 높은 관리들 사이에서 성유물을 수집하는 관행이 성행했으며, [[종교 개혁]]을 추진했던 [[마르틴 루터]]를 바르트부르크성에 보호해 주어서 끝내 개혁을 완성시키는 데 일조한 [[작센]]의 선제 후 [[프리드리히 3세]](Friedrich III)조차 5,005점의 성유물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출처14 [[http://www.newsmission.com/news/news_view.asp?seq=73582|종교개혁, 성경 위에 예술을 꽃피우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는 달리 진짜 성인의 유물은 매우 한정적이기에, 가짜 성유물들의 제작 및 판매가 이루어지게 된다. 9권과 10권에 언급되는 늑대의 발바닥[* 루피마을을 지켜주던 늑대의 발바닥으로 그 늑대는 [[현랑 호로|호로]]와 마찬가지로 [[늑대와 향신료/정령|정령]]이다.]을 둘러싼 교회, 국왕, 상인 간의 다툼은 바로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 * "[[포도원]] 소유주는 대부분 [[귀족]]인데,"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14세기 쯤부터 교회가 운영하던 포도원 재배가 귀족으로 넘어가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wiki style="margin:10px" {{{-1 시간이 흐르면서 [[이집트인]], [[그리스인]], 로마인이 가장 능숙하게 포도주를 제조할 수 있게 되었다. 중세로 접어들면서 고대의 과학적 발견 중 상당수가 잊히고 말았지만 포도주 제조법만큼은 [[수도자]]들의 노력 및 종교와 포도주의 밀접한 연관성 때문에 살아남았다. __1500년대쯤에는 교회가 벌이는 사업의 일환이었던 포도원 재배가 개인이 운영하는 형태로 전환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개인 중 상당수가 귀족이었다.__ }}}}}} ---- {{{#!wiki style="margin:10px" {{{-2 에이미 스튜어트 지음, 구계원 옮김, '''『술 취한 식물학자: 위대한 술을 탄생시킨 식물들의 이야기』''', 문학동네, 2016년.}}}}}} || ---- * [[채리엇|이륜전차]], [[충각|파성망치]], 마창상시합 등 당시의 무기체계에 대한 언급도 잠깐 등장한다. 다만 이륜전차의 경우 중세시대에는 기병으로 대체되어 사실상 경기용으로나 사용되었다. 또한 작중에서 긴 자루 끝에 도끼가 달려있는 무기가 언급되는데 이는 13세기 무렵부터 전쟁터에 등장한 [[할버드]]로, 할버드라는 단어 자체가 손잡이도끼, 장대도끼라는 뜻의 중세 저지 [[독일어]] helmbarde와 중세 고지 독일어의 halmbarte에서 따온 것이다. ---- * 15권에서 대륙의 북쪽에 위치한 레노스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바우 상회의 부회장인 [[힐데]] 슈나우[* 대륙의 위치도 현재 유럽의 [[바이에른]] 지역일 뿐 아니라 [[힐데]] 슈나우도 독일식 인명이다.]가 새로운 화폐를 만들기 위해 광산 개발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광산 개발 기술이 담긴 [[금서]]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이는 중세 독일 지역의 주요 산업 중 하나가 광물을 기반으로 한 광산업이라는 사실을 묘사한 것이다. ||||{{{#!wiki style="margin:10px" {{{-1 (중세) [[독일]]의 경제는 급속한 성장을 기록하고 있었다. 독일은 광업과 금속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었으며 금융분야에서는 [[이탈리아]]를 능가했다.(중략) __독일 경제를 이끌었던 분야는 하르츠, 에르츠게비르게, 투링기아 숲, [[알프스]] 등지에 매장되어 있는 광석을 기본으로 하는 광업이었다.__ }}}}}} ---- {{{#!wiki style="margin:10px" {{{-2 '''『케임브리지 독일사』'''}}}}}} || ---- * 고대-중세시대 역사서의 일종인 [[연대기]]를 저술하는 작가들의 존재가 여러번 언급된다. [[크멜슨]]의 [[연금술사]]이자 연대기 작가인 [[디아나 루벤스]], 레노스의 연대기 작가이자 시참사회 서기인 리골로 데드리는 주요 조연급으로 등장. ||||{{{#!wiki style="margin:10px" {{{-1 "혹시 이 마을에 연대기 작가 있어?" 그 말에 마르크의 눈이 동그래진다. "연대기… 작가? 마을의 일기를 주절주절 쓰는 놈들 말이야?" 교회나 귀족들에게 보수를 받고 마을이나 지역의 역사를 글로 기술하는 이들이 연대기 작가다. }}}}}} ---- {{{#!wiki style="margin:10px" {{{-2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늑대와 향신료 (3)』''', 서울, 학산문화사. p.64}}}}}} || 실제 중세에는 역사를 기록하는 연대기 작가들[* 대표적인 인물로 1137년에 [[아서 왕]] 전설의 초창기 버전을 포함한 연대기인 "영국 왕의 역사"를 저술한 몽마우스의 제퍼리, "프랑크 제국사"를 저술한 [[수도자]] 그레고리오, "성속(聖俗) 두 나라의 연대기"를 저술한 독일의 오토 폰 프라이징 등이 유명하다.][* 여담으로 유명 연대기들 중에서 영화로 유명한 [[베오울프]]나 [[영국]]판 [[실록]]인 앵글로색슨 연대기(Anglo-Saxon Chronicle)처럼 작자 미상인 연대기들도 있다.]이 있었으며 이들은 '''전설'''을 비롯한 당시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기록해 남겼다. [[현랑 호로|호로]]의 '''[[전설]]'''속 고향인 [[요이츠]]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기 위해 [[크래프트 로렌스|로렌스]]가 연대기 작가들을 찾아 다니는 것도, 연대기 작가인 [[디아나 루벤스]]가 [[현랑 호로|호로]]의 '''전설'''과 관련된 이야기를 알고 있는 것도 이를 근거로 한 설정이다.[* 참고로 중세시대의 연대기(Chronology)적 서술방식은 현재의 연대기적 서술방식과 달랐는데 "기독교 역사가들은 성경 중심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속세의 연대기를 창출해냈다."라는 말처럼 인간 중심이 아닌 [[성경]] 중심의 저술방식이었기 때문이다.] ---- * [[호로]]가 파치오에 들어서기전 로렌스로부터 사람이 많은 도시라고 말하자, "내가 아는 도시는 이 정도로 크면 왕이 있었어."라는 발언을 하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 시절의 [[폴리스]]와 같은 도시국가들이 있던 시절을 의미한다. ---- * [[작위/유럽|중세 유럽의 작위]]도 등장한다. 공국의 수장을 [[대공(작위)|대공]]이라 부르는 점과, [[변경백|영토를 가진 영주]]중 가장 높은 등급인 [[후작]]등의 설정이 바로 그것.[* 꽤 자주 등장한다. 한가지만 예를 들자면 밀로네 상회의 주인이 남쪽 상업국인 라온딜 공국 제33대 라온딜 대공이 공인한 대 밀로네 후작이 경영한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남쪽 상업국이면서 공국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베네치아 공화국]]의 최고지지도자인 [[도제]](Doge)와 비슷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다만 도제는 귀족들의 투표로 뽑는 직책인 반면 대공은 [[교황]]이나 [[황제]]가 하사하는 직책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 * [[양치기]]를 두고 이질적인 존재로 취급한다는 내용은 [[고대]]~[[중세]]에 양치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묘사한 것이다. 중세의 양치기들은 마을에서 이질적인 존재로 여겨졌고, [[도시]]에 위치한 [[길드]]의 경우에는 특정 직업출신 및 그들의 자녀 기피했는데 이중 방앗간치기, [[징세청부업자|세리]], [[광대]]와 더불어 [[양치기]]도 포함되었다. ||||{{{#!wiki style="margin:10px" {{{-1 마법은 불가사의한 능력에 속했는데 이런 식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중세 문화사에서 흔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대체로 중세 사회에서 마녀나 [[유태인]]처럼 차별을 받던 존재들은 공동체에 필수 불가결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보인 반면 그렇기 때문에 유사시에 통제 불가능할 것이라는 공포심을 심어주었고, 그 때문에 마치 [[늑대인간]]이나 [[뱀파이어]]처럼 언제든지 추방당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런 직업군에는 [[사형]] 집행인이나 [[양치기]], 또는 [[물레방아]]를 관리하는 방아꾼 같은 부류가 속했다. __[[양치기]]나 목동에 대한 중세인들이 품었던 신비주의는 상당히 흥미롭다. 중세인들에게 자신이 속한 마을이라는 곳은 소(小)[[우주]]였는데 이 소우주 바깥에 대(大)우주가 존재한다고 중세인들은 믿었다. 대우주는 소우주로 들어올 수 없는 괴물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양치기는 소우주를 지배하는 질서에 속하면서도 무서운 대우주로 나가서 양을 치거나 간혹 늑대에 맞서 싸움을 벌이는 존재였다.__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하는 양치기 소년에 대한 우화는 바로 이를 상징한다고 할 수도 있다. __양치기는 유용하고 필요한 존재지만 때로는 신뢰하기 어려웠다.__ }}}}}} ---- {{{#!wiki style="margin:10px" {{{-2 이택광 지음, '''『마녀 프레임 - 마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자음과모음, 2013년}}}}}} || ---- ||||{{{#!wiki style="margin:10px" {{{-1 여행하는 도중에 양치기를 만나게 되면 나그네는 2가지를 주의해야 한다고 한다. __하나는 [[양치기]]의 기분을 해치지 말 것. 또 하나는 로브 속에 있는 것이 악마가 아닌지 잘 확인할 것.__ 그런 알 수 없는 주의사항을 떠올리게 하는 양치기는 행상인보다도 한층 더 외로운 직업이다. 이 휑뎅그렁한 초원에서 양치기견만 데리고 양떼와 함게 이동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무엇보다 저들은 일의 성격상 제대로 된 사람으로 여기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로지 홀로 몇날 며칠이고 초원의 한복판에서 수많은 동물을 데리고 다니면서 한 손에 지팡이를 든 채 뿔피리를 불어 동물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모습을 보면 '''[[이교도]]의 주술사를 쉽사리 연상하게 된다.''' __여행하는 도중에 양치기를 마주치게 되면 대지의 정령에게 가호를 받아 일주일 동안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 대신, 악마가 변신을 하는 경우도 있어서 자칫하면 양치기가 거느리고 있는 양 속에 영혼이 봉인되는 수도 있다고 전해진다.__ }}}}}} ---- {{{#!wiki style="margin:10px" {{{-2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늑대와 향신료 (2)』''', 서울, 학산문화사. p.90}}}}}} || ---- {{{#!wiki style="margin: 24px 0 0 16px; float: right; width: 30%; max-width: 600px; font-size: .9em" [[파일:신성 로마 제국 국기(후광 포함).svg|width=100%]][br] 신성로마제국기 }}} * 귀족들이 가문의 문장으로 [[독수리]]를 많이 쓴다는 언급을 하는데 이는 실제 13~14세기 [[독일]] 지역의 귀족들이 가문의 문양을 만들 때 독수리를 집어넣은 것을 의미한다. [[고대 로마]]의 상징 동물이 독수리였고, 이후 ~~이름은 로마이지만 [[고대 로마]]와는 전혀 상관 없는~~ [[신성 로마 제국]]이 독수리를 황실 가문의 상징으로 사용하면서 이후 귀족들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http://jodesign.kr/entry/%EB%8F%85%EC%9D%BC%EC%9D%98-%EB%8F%85%EC%88%98%EB%A6%AC-%EB%AC%B8%EC%96%912|관련 포스팅]] ||||{{{#!wiki style="margin:10px" {{{-1 "하여튼 저놈들은 간이 큰 건지 작은 건지 알 수가 없다니까." "귀족들의 문장에 독수리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일지도 모르지." }}}}}} ---- {{{#!wiki style="margin:10px" {{{-2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늑대와 향신료 (12)』''', 서울, 학산문화사.}}}}}} || "([[신성 로마 제국|중세 최강의 국가]]의 상징인) [[독수리]]를 베껴 쓰는 놈들은 간이 크다."는 로렌스의 발언은 이런 중세 시대의 분위기와 유행을 반영한 대사인 것이다. ---- * 북방으로 올라갈수록 목조 건축물이 대세라는 이야기는 당시 [[북유럽]] 특유의 건축문화를 말한다. 이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바로 [[노르웨이]]에 위치한 우르네스 통널 교회(Urnes stavkyrkje)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2/16/2015121604355.html|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교회...악천후에도 800년을 버텼죠.]] ||||{{{#!wiki style="margin:10px" {{{-1 게다가 북방 지역은 북으로 가면 갈수록 양질의 보석을 채취하기가 어려워지고, 큰 건물이라도 목조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북방 지역의 교회에서는 [[스테인드 글라스|색유리]]로 그린 성인이나, 기둥머리에 새겨진 조각상 같은 것은 보기가 힘든 대신, 교회의 가르침을 포교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그림에 의존하게 되는 경향이 크다. }}}}}} ---- {{{#!wiki style="margin:10px" {{{-2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늑대와 향신료 (12)』''', 서울, 학산문화사. p.89}}}}}} || ---- * 로렌스가 [[맥각 중독|독보리]]와 관련해 인간의 탐욕을 바라보며 "악마는 악한 짓을 해서 악마가 아니다, 악마는 나쁜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라는 발언을 한다. 이는 고대로부터 인간의 삶과 종교에서 악마라는 악한 존재가 탄생하게 된 이유를 요약한 것이다. <악마의 탄생>이라는 책을 저술한 19세기 [[자연철학|과학철학자]] 폴 카루스는 "고대인들은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각종 재해를 바라보며 악마라는 존재를 탄생시켰고, 이것이 [[신]]이라는 개념과 종교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wiki style="margin:10px" {{{-1 악마 역시 신과 똑같이 인간 경험의 실재적인 부분을 상징하고, 양자 모두 제도화되고 인격화된 존재들이다. 신과 악마는 인간의 마음이 창조해 낸 것이지만, 악마가 단순히 악의 상징일 뿐이라고 해서 악이 덜 실재적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 ---- {{{#!wiki style="margin:10px" {{{-2 폴 루카스 지음, 이지현 옮김, '''『악마의 탄생 : 선에 대한 끝없는 투쟁』'''}}}}}} || ---- ||||{{{#!wiki style="margin:10px" {{{-1 악마가 독보리를 넣었건 누군가 악의를 품은 자가 넣었건, 재앙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그 원인을 캐고 싶어 한다. 악한 짓을 해서 악마인 것이 아니다. 나쁜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악마인 것이다. }}}}}} ---- {{{#!wiki style="margin:10px" {{{-2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늑대와 향신료 (4)』''', 서울, 학산문화사.}}}}}} || ---- * 각 국가별로 숫자 표기법이 다르다는 대목은 실제 중세 초까지 각지역별로 숫자를 표기하는 방법이 달랐음을 의미한다.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아라비아 숫자]]가 유럽 전역에 퍼지게 된것은 1202년 [[레오나르도 피보나치]]가 유럽에 이를 소개하면서 부터였고 이것이 일반화 된것은 수세기가 지난 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